서울회생법원장 "기업은 회생신청 6개월 전에 그때가 구조조정에 나서야 할 시점"
페이지 정보
작성자 회생연구소 댓글 0건 조회 139회 작성일 25-03-13 15:08본문
“기업은 회생 신청 6개월 전에 이미 위기를 알고 있습니다. 그때가 바로 구조조정에 적극 나서야 할 시점입니다.” 정준영 신임 서울회생법원장은 1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업 회생 제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. 앞으로는 회생법원이 기존의 사후적 처방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선제적 예방에 더 중점을 두겠다는 것이다. 최근 연 매출 120억원 이하 소기업(일명 꼬마기업) 회생에 ‘종합적 고려법’을 처음으로 적용한 것이나, 중견·대기업을 대상으로 ‘예방적 자율구조조정(Pre-ARS)’이라는 혁신적 제도를 시행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. 지난 4일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신청에 11시간 만에 개시 결정을 내리고, 1주일 내에 협력업체와 임차인에 대한 4500억원이 넘는 조기변제를 허가한 것도 회생법원의 신속 대응 의지를 보여준다. 정 법원장은 법원에서 1996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도산 관련 업무를 맡아 한국 도산법 혁신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. 이제 그가 주목하는 것은 법정이 아니라 법정에 오기 전 6개월의 ‘골든타임’이다.
▷취임사에서 ‘실패한 기업에 기회를 주는 것’을 회생법원의 역할이라고 했습니다.
“회생법원은 단순히 도산 절차를 관리하는 곳이 아닙니다. 실패한 기업과 개인에게 다시 도전할 기회를 주는 게 우리 역할입니다. 축구 심판처럼 규칙을 공정하게 적용하면서, 창의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.”
▷홈플러스 회생절차 개시를 신속하게 결정한 것도 이런 취지인가요.
“마트산업의 대표 주자인 홈플러스는 하루만 영업이 중단돼도 5만 개 상품 공급망이 무너질 위기였습니다. 수천 명의 직원과 협력업체의 생존이 걸린 문제였죠. ‘멜팅 아이스큐브’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 가치가 녹아내리기 때문에 영업을 보존하기 위해 신속히 결정했습니다.”
▷벽산엔지니어링의 회생 신청으로 중견 건설사 도산 위기도 커지고 있습니다.
“기업은 회생 신청 6개월 전에 이미 위기를 알고 있으므로 그 순간부터 구조조정을 시작해야 합니다. 건설업은 협력업체가 많아 상거래 채권 변제가 특히 중요한 만큼 예방적 구조조정이 더욱 필요합니다. 산업 전체의 연쇄 도산을 막기 위해서도 그렇고요.”
▷올해 소기업 회생 신청도 늘어날 것으로 봅니까.
“올해부터 소기업의 회생 신청이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합니다. 최근 소기업 회생절차에 종합적 고려법을 적용하기 시작한 것도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입니다. 미국도 2019년 이 제도를 도입하고 코로나19 이후 소기업의 회생 신청이 늘어 활성화했죠.”
▷종합적 고려법은 무엇인가요.
“꼬마기업 즉, 소기업은 기업가가 곧 기업입니다. 기업가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죠. 기존 회생절차에서는 채무를 출자전환하면 경영권이 금융회사에 넘어갑니다. 그런데 금융회사는 소기업에 관심이 없어 어정쩡한 관계가 됩니다. 이번에 도입한 종합적 고려법은 소기업 회생에서 기업가의 경영권을 보장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입니다.”
▷중견·대기업에도 적용됩니까.
“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확대할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지만, 우선 소기업부터 시작했습니다. 소기업은 종합적 고려법을 통해 책임경영을 할 수 있게 하고, 대기업은 시점을 당겨서 회생 신청 전에 구조조정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.”
▷회생 신청 전 구조조정이 왜 중요한가요.
“회생법원은 2018년 ARS(자율구조조정지원) 제도를 도입했지만 최근 티메프(티몬·위메프) 정산 지연 사태에서 본 것처럼 회생 신청 후에 하면 이미 늦습니다. 기업은 보통 회생 신청 6개월 전에 위기를 감지하는데, 그냥 내버려 두면 회사가 심각하게 망가집니다. 그래서 회생 신청 전 예방적 구조조정이 필요하죠. 이것은 기업 회생과 관련한 세계적 트렌드이기도 합니다.”
▷‘Pre-ARS’는 ARS와 어떻게 다른가요.
“Pre-ARS는 회생 신청 전 단계에서 진행되는 예방적 자율구조조정입니다. 기업이 아직 정상 영업 중일 때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평판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. 핵심은 상거래 채권은 정상 변제하고 금융채권만 조정하는 것으로, 도산 절차가 아니라는 점이 기존 ARS와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.”
▷법원의 조정제도를 활용합니까.
“네, 조정제도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. 예를 들어 채무자가 일부 채권자와 협의했지만 나머지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조정 신청을 통해 한 테이블에 모여 솔직하게 논의할 수 있습니다. 각자 정보를 공유하며 비공개로 해결책을 찾는 것이 핵심입니다.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활성화할 계획입니다.”
▷이미 워크아웃이 있는데요.
“워크아웃은 원래 채무자와 채권자들 사이의 유연한 자율협약 형태 구조조정 방식으로 1990년대 말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성공적으로 기여했습니다. 하지만 이후 기업구조조정촉진법 등에 의해 법제화돼 유연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. 이제는 그보다 더 선제적이고 유연한 자율적 구조조정 방식이 필요합니다.”
▷금융당국과의 협력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.
“맞습니다. 사전 구조조정 제도를 성공적으로 활성화하려면 1990년대 말 워크아웃 도입 때처럼 금융당국의 역할이 중요합니다. 최근 금융당국이 선제적 여신 관리, 산업 구조조정 등의 메시지를 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봅니다.”
▷회생법원도 인공지능(AI)을 활용할 계획이 있습니까.
“네, 특히 연 4만 건이 접수되는 개인파산 분야에 AI 심리방식 도입을 고려할 만합니다. 파산신청서와 파산관재인 보고서를 전산 양식화해 데이터가 축적되면 AI가 1차 심리를 담당하고 최종 결정은 판사가 내리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. 이를 통해 전국 법원 간 편차를 줄이고 더 공정하고 신속한 처리가 가능해질 것입니다.”
▷법관 구성에도 변화가 있다고 들었습니다.
“20년 경력의 부장판사를 두 분 증원해 기업회생 사건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사무 분담을 조정했습니다. 기업회생 재판부가 늘어난 셈이죠. 한 기업의 회생은 종업원, 협력업체, 지역사회 모두의 회생이기에 경험 많은 판사들의 노하우가 필요합니다.”
▷회생법원의 역할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까요.
댓글목록
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.